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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자유롭게 헤엄치고 싶은 사람들에게




취재 정세미 기자 사진 윤주성 프리랜서


장소 제공 소소한 즐거움 


그림책 작가가 되기까지

 

그림책 작가가 된 이유가 있을까요?

스무 살에 바로 취업해서 회사를 다녔는데 다니다 보니 회사 생활이 제 적성에 맞지 않았어요. 내가 잘할 수 있고 좋아하는 일을 해 보자고 마음먹은 뒤 일러스트레이터가 되겠다고 결심하여 1년 만에 회사를 그만두었어요. 그림에 소질이 있다기보다 그림 그리길 좋아했고 제가 좋아하는 걸 하면서 즐겁게 살아야겠단 생각이 컸어요. 그 전에는 일러스트레이터란 직업에 대해 어렴풋이 알아서 일러스트레이터가 된다는 건 곧 그림책 작가가 되는 거라고 바로 연결 지었어요. 나중에 일러스트레이터가 되고 나서야 일러스트레이터가 다양한 일을 하고 모두가 다 그림책을 만드는 건 아니라는 걸 알았지만요. 스물한 살에 바로 현장에 뛰어들어서 일했어요. 일하다 부족함을 느껴서 미대에 들어갔고, 졸업 후에는 일러스트레이터를 계속할 것인가 말 것인가 고민한 끝에 한국 일러스트레이션 학교 힐스에 들어갔어요. 고민한 시간과 이 일과 관련해서 경험한 시간이 긴 만큼 내 이야길 하고 싶은 간절함이 컸어요. 일러스트레이터로서 한번쯤은 그림책을 만들고 싶단 바람이 있었죠.

 

그림책 작가가 되기까지 영향을 받은 작가가 있을까요?

어린 시절에는 그림 그리는 사람은 배고프고 힘든 직업이라는 생각에 직업으로 생각하지 않았어요. 다만 크리스마스 때 TV에서 본 레이몬드 브릭스의 <눈사람 아저씨>를 어른이 되어서까지 마음속에 품고 있었어요. 그 아름다움에 대한 감동이 마음 한구석에 있었죠. 이 작가처럼 되어야겠다기보다 이런 아름다운 그림을 그려 보고 싶었어요. 일러스트레이터가 되겠다고 결심했을 무렵 처음으로 산 책이기도 하고요. 이 밖에도 많은 그림책 작가를 접했어요. 한때는 베아트리체 알라마나 작가에게 푹 빠져 나도 모르게 이 작가의 아류 같은 작품만 그릴 때도 있었고, 또 다른 작가의 세계에서 허우적거릴 때도 많았죠. 다양한 작가의 작품에 빠져서 탐구하고 영향을 받았어요. 특별히 콕 집어서 어떤 작가에게 영향을 받았다기보다 여러 작가의 영향을 두루 많이 받았어요.

 

첫 그림책 <수영장> 2015년 미국일러스트레이션협회 최고의 그림책으로 선정되었어요. 어떤 생각이 들었나요?

당연히 매우 기쁘고 울기도 했는데 사실 기쁨이 오래가지는 않더라고요. 너무 들뜨지 않으려고 해요. 어차피 그림책 작가는 평생 할 일이고, ‘그림책 작가로서 이런 일도 있고 저런 일도 있는데 그중에 있는 좋은 일이구나!’ 생각하려고요. 수영장은 고맙게도 아주 잘 나와 줬고 앞으로 알아서 잘 살아갈 아이니까 잠시 내려놓고 저는 다음 작품을 봐야죠.

 

첫 그림책 출판 이후 수상도 하고 많은 일이 있었어요. 어떤 일들이 있었나요?

작년 10월 이탈리아에서 원화 전시를 시작해 올해 1월까지 1차 전시를 했고, 지금은 이탈리아 11개 도시를 돌면서 순회 전시를 하고 있어요. 제가 그린 원화 중 일부를 보냈고 아직 돌아오지 않은 상태예요. 그림이 무사히 잘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어요. 외국 독자가 그림을 사고 싶다는 메일을 보내기도 했어요. 호주에서 일곱 살짜리 딸을 기르는 엄마인데 딸이 <수영장> 그림책을 굉장히 좋아해서 그림을 사고 싶다는 거였어요. 저한테 이런 연락이 온 게 처음이라 이분이 매우 소중하더라고요. 그 그림을 아트프린트하고 편지를 써서 보내 줬어요.

 

그림책이 미국, 스페인, 이탈리아로 수출되고 해외 수상을 하는 등 처음부터 눈에 띄는 성과가 있었어요. 이 점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나요?

많이 오해하시는 점이 제가 첫 번째 그림책으로 수상을 했으니 그림을 시작하자마자 결과가 나온 걸로 여기고 대단하게 보시는 분도 있어요. 하지만 전 그 전부터 쭉 준비해 왔어요. 그림을 그려야겠다고 마음먹은 게 스물한 살이고 2015년에 상을 받았으니 그동안 15년의 세월이 있어요. 천재적이고 재능이 뛰어났으면 스물한 살에 받아야 놀랄 일이죠. 15년 동안 계속 그림을 그리고 그림책을 만들기 위해 노력한 시간이 분명히 있어요. 수많은 시도를 했고 딱 한 번 성공했는데 그게 <수영장>이에요.

 

수많은 시도란 어떤 것을 말하는 건가요?

<수영장>이란 작품이 나오기 전까지 조그만 작품부터 다양한 그림책을 많이 만들었어요. 특히 책이 나오기 직전에 열린 힐스의 졸업 전시에서 두 가지 작품을 전시했는데 제 성에도 차지 않았고 교수님들 평가도 안 좋았어요. 생각해 보니 제가 작업하는 방법을 잘 몰랐어요. <수영장>을 그리면서는 작업을 시작할 때 어떤 이미지가 다가오고 그 이미지들을 나열하면서 하나의 이야기를 찾았어요. 그 전에는 주제를 정하고 메시지를 정하고 이미지를 만들어 나갔으니 순서가 바뀌지 않았나 생각해요.






그림책 <수영장> 이야기

 

수영장을 소재로 그림책을 낸 이유가 있을까요? 
그림책으로 그릴 다양한 소재를 찾다가 이 작품을 그렸다기보다 이 이야기가 저에게 와 주었어요. 우연히 조카들과 자그마한 수영장에 갔다가 발견한 장면이 기억에 남았어요. 제가 수영을 못해서 튜브를 끼고 구명조끼를 입고 수영장에서 놀고 있었는데 갑자기 자연스럽게 물 위에 둥둥 떠 보고 싶더라고요. 용기를 내어 구명조끼를 벗고 튜브에서 나오는데 그때 튜브가 살짝 가라앉으면서 본 수영장의 수면이 기억에 남았어요. 그 좁은 수면에서 다리를 부지런히 움직이는 수많은 사람과 수면 아래 숨겨진 큰 공간이 보였죠. 용기를 내서 물에 들어간 순간부터 이 풍경을 보기까지의 순간이 하나로 모아지면서 <수영장>이란 그림책으로 풀어낼 수 있었어요.

 

왜 글이 없는 그림책을 냈나요?

시작부터 글이 없는 그림책을 내려고 한 건 아니었어요. 자연스럽게 작업을 하다 보니 글 없는 그림책이 나왔어요. 볼로냐도서전시회에 갔을 때 어떤 출판사에서는 글을 추가로 써 줬으면 좋겠다고 제안했어요. 고민해 봤는데 글이 없어도 충분히 이야기가 전달될 것 같아서 그대로 진행했어요. 마지막 세상을 자유롭게 헤엄치고 싶은 사람들에게란 문구는 사실 작가 소개로 이 세상을 자유롭게 헤엄치고 싶은 사람입니다라고 썼던 말이에요. 그림책의 마지막 장과 더 잘 어울려서 넣었어요.

 

<수영장>이 글이 없어서인지 어른을 위한 그림책이라고 불리기도 해요. 이 점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나요?

어린이 책은 귀엽고 착하고 순하고 정답이 눈에 보여야 한다는 틀에서 그림책을 보는 게 아닐까요. <수영장>은 그런 책과는 약간 거리가 있어서 그렇게 느끼는 것 같아요. 어른이 같이 보면 좋은 책이지 어른을 위한 동화는 절대 아니에요. 아이들은 그림책을 스스럼없이 즐겨요. 가끔 <수영장>으로 아이들과 작가와의 만남을 갖다 보면 아이들은 그림책 하나를 두고도 많은 생각을 하고 그림책을 자유롭게 즐기고 있다는 게 느껴져요. “왜 글이 없어요? 프린터 잉크가 모자랐어요?” “눈에서 물고기가 어떻게 나와요? 가슴에서 나오는 건가요?” 하면서 질문도 하고요. 시키지도 않았는데 수영장이란 시를 짓기도 하고요.



앞으로도 그림책 작가로 살기

 

학부모와 교사는 수많은 그림책 속에서 어떤 그림책을 아이에게 읽혀야 하는지 늘 고민이에요. 그림책 작가로서 학부모나 교사에게 그림책 고르는 방법에 대해 조언해 줄 수 있나요?

내가 어떤 그림책을 읽어 보라고 조언하는 게 가당키나 한가?’ 이런 생각이 들어요. 오히려 저보다 잘 아실거예요. 제가 학부모나 선생님에게 들어야 될 입장이 아닌가 싶어요. 다만 그림책 작가로서 바람이 있다면 당장 이 그림책이 답이 똑 떨어지는 이야기가 아니더라도, 실용적이지 않게 느껴져도 생각의 여지가 많은 시적이고 아름다운 그림책들을 아이들에게 더 많이 읽혔으면 좋겠어요. 아이가 마음껏 놀고 생각하는 순간이 어렸을 때라도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세상에 하나로 결론 나는 정답은 없어요. 수학의 경우도 정답으로 똑 떨어지지 않는 건 수학자들의 합의 아래 임의의 답을 정하기도 한대요. 그냥 그림책은 그 자체를 즐기고 좋으면 좋은 대로 느꼈으면 좋겠어요.

 

그림책을 고르는 나만의 기준이 있나요?

사실 제가 좋아하는 그림책은 대체로 인기가 없어요. 제가 좋은 책들을 찾아보려고 노력하기보다 제 눈에 좋고 아름답게 느껴지는 것들을 봐요. 개인 취향인데 글보다는 그림이 많은 그림책에 자꾸 끌리더라고요. 또 텍스트가 산문이라기보다 운문에 가까운 시적인 그림책에 먼저 마음이 가고요.

 

앞으로 어떤 그림책 작가가 되고 싶나요?

<수영장> 이후로 다음 작품을 준비하고 있어요. 이번에는 문에 대한 이야기예요. 80%까지 완성되었죠. 무엇보다 결국은 꾸준히 작품 활동을 이어 가는 작가가 되고 싶어요. 이게 쉽지 않다는 걸 느끼고 있거든요. 정말 그게 다예요. 작품을 몇 권 내고 그만두는 게 아니라 2년에 한 번이든 3년에 한 번이든 그림책을 만들어 내는 작가가 되고 싶어요


수영장

이지현 작가의 첫 그림책으로 2015년 미국일러스트레이터협회 최고의 어린이책으로 선정되었고 미국, 스페인, 이탈리아에서도 만날 수 있다. 소년이 수영장의 수면 안으로 잠수해 들어가면서 소녀를 만나고 신기한 생물들을 만나면서 겪게 되는 이야기를 그린 글 없는 그림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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